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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 속 타자에 대한 시선, 확신이 만든 비극, 인간 불신의 구조

by seesaw2712 2026. 2. 18.

영화 '곡성' 포스터
영화 '곡성' 포스터

영화 ‘곡성’은 한국 오컬트 영화의 흐름 속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단순한 귀신 이야기나 주술적 공포를 넘어, ‘타자에 대한 시선’, ‘확신이 만든 비극’, ‘인간 불신의 구조’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글에서는 ‘일본인은 악인가, 인간인가’, ‘확신이 만든 비극’, ‘곡성은 인간 불신의 이야기인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작품을 깊이 있게 분석한다.

일본인은 악인가, 인간인가 : 타자에 대한 공포의 구조

‘곡성’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은 산속에 사는 일본인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심의 대상이 된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외지인’이라 부르며 거리감을 둔다. 특히 일본인이라는 설정은 역사적 맥락을 자연스럽게 불러온다. 한국 사회에서 일본은 단순한 이웃 국가가 아니라, 식민지 경험이라는 기억과 연결된 존재다. 그러나 영화는 그를 단순한 악으로 고정하지 않는다. 그는 때로는 두려움에 떠는 인간처럼 보이고, 때로는 악마적 존재처럼 묘사된다. 문제는 관객이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본인은 악인가, 아니면 의심받는 희생자인가. 이 모호성은 ‘타자 공포’의 구조를 드러낸다. 공동체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내부의 원인보다 외부의 존재를 의심하기 쉽다. 외지인은 설명하기 쉬운 희생양이 된다. 지금도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특정 집단이 과도하게 비난받는 사례는 반복된다. ‘곡성’은 이런 집단 심리를 오컬트 장르 안에 녹여낸다. 한국 오컬트 영화들이 종종 악의 정체를 명확히 규정하는 반면, ‘곡성’은 끝까지 판단을 유보한다. 이는 공포의 근원이 귀신이 아니라, ‘확신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있음을 암시한다.

확신이 만든 비극 – 의심과 믿음 사이의 선택

주인공 종구는 평범한 경찰이다. 그는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만, 점점 혼란에 빠진다. 무당 일광의 말, 일본인의 행동, 무명이라는 여인의 경고는 서로 충돌한다. 문제는 종구가 ‘어떤 말을 믿을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종구는 점점 확신에 사로잡힌다. 일본인이 악이라는 가설을 굳히고, 그 확신을 뒷받침하는 증거만을 찾는다. 이는 인간의 인지적 편향과 닮아 있다. 한 번 결론을 내리면, 반대 증거는 배제하게 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종구가 내리는 선택은 비극으로 이어진다. 그는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였지만, 결과적으로 파국을 초래한다. 이 장면은 믿음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의심을 멈춘 믿음’이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현재 정보 환경 역시 유사하다. 알고리즘은 개인의 확신을 강화하는 정보만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 확증 편향은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킨다. ‘곡성’은 오컬트적 사건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확신에 갇히는지를 보여준다. 비극은 초자연적 존재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선택한 믿음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악의 정체보다, 선택의 책임을 더 강조한다.

곡성은 인간 불신의 이야기인가 – 공동체의 붕괴

‘곡성’의 마을은 처음에는 평온해 보인다. 그러나 의심이 퍼지면서 공동체는 빠르게 무너진다. 서로를 경계하고, 외지인을 배척하며, 소문은 사실처럼 굳어진다. 공포는 전염된다. 이 영화는 단순히 귀신을 두려워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는 상황을 더 무섭게 그린다. 종구는 무명을 의심하고, 무명은 일본인을 의심한다. 무당 일광의 의도 역시 명확하지 않다. 모든 인물이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한국 오컬트 영화 중 일부는 악의 근원을 초월적 존재에 두지만, ‘곡성’은 인간 내부의 불안을 강조한다. 신앙, 주술, 과학 어느 것도 절대적 진실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 모호함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남긴다. 사회적 신뢰는 중요한 화두다. 정치적 갈등, 정보 왜곡, 집단 간 혐오는 불신을 확대한다. ‘곡성’은 이를 예언하듯, 불신이 어떻게 파국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결국 영화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일본인이 악인지, 무명이 선인지, 무당이 거짓인지 확정하지 않는다. 이 열린 결말은 관객에게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타자를 악으로 규정하고, 얼마나 쉽게 확신에 매달리는가. ‘곡성’은 타자에 대한 공포, 확신이 만든 비극, 인간 불신의 구조를 통해 한국 오컬트 영화의 지평을 확장한 작품이다. 일본인은 악인지 인간인지 끝내 단정할 수 없으며, 비극은 인간의 선택에서 비롯된다.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우리는 공포의 대상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확신하고 있는가.